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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727 호 [알유뮤덕]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작은 섬에서 모인 크고 따뜻한 마음

  • 작성일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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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6415
김상범

[알유뮤덕; 알면 유용한 뮤지컬 덕질]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작은 섬에서 모인 크고 따뜻한 마음

▲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포스터 (출처: 쇼노트)


  국내의 여러 뮤지컬 제작사 중 ‘쇼노트’는 해외에서 무대에 오른 좋은 작품들을 국내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 편이다. 올해만 해도 ‘이프덴’, ‘멤피스’의 초연으로 많은 관객들의 신임을 얻은 ‘쇼노트’가 이번에 당당히 가져온 작품이 바로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다. 인터미션(중간 쉬는 시간을 의미) 20분을 포함해 총 130분의 짧은 러닝타임을 지닌 이 극은, 앙상블 없이 12명의 주연배우만이 등장한다. 상황에 따라 낯선 ‘갠더’ 시에 하루아침에 착륙하게 된 이방인을 연기하기도, ‘갠더’ 시에 원래 있던 주민들을 연기하기도 하며 무대를 꽉 채운다는 특징을 지닌다.


  ‘컴 프롬 어웨이’는 911테러 사건으로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에 일시적으로 착륙하게 된 이들을 다루는 뮤지컬이다. 섬에 위치한 공항 근처의 작은 동네 ‘갠더’는, 없어지는 줄만 알았던 공항에 갑자기 불시착하게 된 38편의 비행기 손님들을 맞느라 한창 분주해진다. 버스노조와 얼굴을 붉히며 다투던 시장도, 평범한 작은 초등학교의 교사도, 신입 기자도 새로운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하며 일단은 힘을 합친다. 학교를 열고, 장을 보고, 요리도 해 이방인들에게 정성껏 대접해 주려 노력한다. 어떤 일로 자신들이 이 섬에 착륙하게 되었는지조차도 모르던 이들은, 뉴스를 보고서야 911테러가 발발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고, 언제 돌아갈 수 있냐며 한탄하기도, 자기 가족을 걱정하기도 한다. ‘갠더’ 시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주민들은 그런 이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집을 보금자리로 오픈해주기도, 이야기를 속 깊게 들어주기도, 함께 행사에 불러주기도 하며 거리낌 없이 대해준다. 기본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인들은, 처음에는 이 낯선 섬의 캐나다인들이 베푸는 친절에 처음에는 불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내 몇몇 탑승객들은, 마음을 열고 주민들을 믿기 시작한다. 지갑이 어디 있는지만 찾기 급급하던 승객도, 평생을 워커홀릭으로만 살아왔던 승객도, ‘갠더’에서 ‘평온함’과,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되기도 했다. 이윽고 며칠이 지나, 허리케인이 찾아오려는 듯 세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야 이륙 명령이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간 여러 편의 비행기의 승객들, 그들은 그토록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무언가 큰 공허함을 느낀다. 여기까지가 스포일러를 배제한 이 뮤지컬의 줄거리이다. ‘갠더’에서의 경험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초연 캐스팅으로는 닉 외 역할에 남경주, 이정열 배우님이, 클로드 외 역할에는 서현철, 고창석 배우님이 캐스팅되었다. 다이엔 외 역할은 최정원, 최현주 배우님이, 블라 외 역에는 정영주, 장예원 배우님, 비벌리 외 역에는 신영숙, 차지연 배우님, 케빈 T 외 역에 지현준, 주민진 배우님이 캐스팅되었다. 그 외에도 오즈, 한나, 보니, 밥, 케빈 J, 재니스 외 역에는 각각 심재현, 이정수 배우님, 김아영, 이현진 배우님, 정영아, 김지혜 배우님, 신창주, 김승용 배우님, 현석준, 김찬종 배우님, 나하나, 홍서영 배우님이 참여하였다. 한 인물마다 더블캐스팅으로 짜여져 있으며, 스윙에는 김주영, 김영광 님이 있다.

▲ 참여배우들의 단체컷 (출처: 쇼노트 인스타그램)


  타 뮤지컬 작품들에 비해 ‘컴 프롬 어웨이’는 넘버가 많은 편에 속하지는 않는 작품이다. 또한 다같이 부르는 떼창 넘버가 많고, 넘버가 한 번 보는 것만으로 귀에 딱 꽂히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몇 곡 소개해보자면, 첫 넘버인 ‘Welcome to the rock’을 빼놓을 수 없다. 칼군무, 칼박자가 유독 돋보이는 이 곡은 흥겨운 박자에 맞춰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게 된다. 첫 넘버인 만큼 ’갠더‘ 시 주민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일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제작사 공식 유튜브 채널에도 박제(노래, 무대 영상이 공식적으로 업로드됨을 의미)된 ‘Me and the sky’ 넘버 역시 인상적이다. 수많은 비행기 중 한 대의 비행기를 몰고 온 파일럿, ‘비벌리’. 그녀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자 하늘과 비행기, 승객들과 자신의 일을 매우 사랑한다. 극 내내 비행기가 망가질까, 영영 뜨지 못할까 걱정만 하던 그녀는, 이륙 명령을 전달받으며 이 넘버를 부른다. 어릴 적부터 드넓은 하늘을 날고 싶었던 게 꿈이던 그녀, 여러 파일럿과 승무원에게 무시받던 그녀는 ‘드디어 내 하늘에 닿을 수 있었다.’며 온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 마지막에는 ‘내가 가장 아끼는 게(비행기) 폭탄이 된 거야’라며 9.11 테러에 대한 안타까운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벅찬 분위기가 느껴져야 하는 곡이고, 원곡은 영어로 작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번안이 매끄럽게 잘 된 축에 속해서 인상적이다. ‘비벌리’라는 캐릭터는 극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단독 넘버인 만큼 관객들의 환호가 길게 이어진다.


  놀랍게도 ‘컴 프롬 어웨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노란 리본 작전’, 이 작전이 바로 캐나다에서 9.11 테러 발생 직후 시행했던 민항기 유도 작전으로, 뮤지컬의 배경이 된다. 당시 ‘갠더’에는 살고 있던 주민이 만 명도 되지 않았지만, 작전으로 인해 총 38대의 비행기가 비상 착륙하게 되었고, 이때 맞이한 승객들만 6천 명이 넘었다고 하니 작은 동네에 얼마나 큰일이었는지 상상해 볼 만하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이 만들어질 때부터 고증을 중시하였던 터라 대다수의 등장인물 역시 실존 인물이거나, 실존 인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이니까 가능할 법한 희망적인 이야기’라고만 생각될 법한 것이 실제 있었던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이 작품에 더 이끌렸던 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참 살기 팍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짐을 옮겨달라는 부탁도 혹여나 마약일까, 선뜻 돕기 어려운 사회, 폐지 줍는 분들을 보고도 동정과 연민의 마음보다는 건물주는 아닐지 의심하는 사회, 후원자를 모집하는 방송을 보다가도 나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며 꺼버리는 사회가 되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가깝지 않은 이들에게, 어쩌면 모르는 이들에게 온정과 금전적인 자원을 베푸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갠더’ 시의 이들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나는 이 뮤지컬을 보며,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몰려갔던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같이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한 사례들이 떠올라 가슴이 따뜻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탄 이들이, ‘갠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기 위해 돈을 모으고 한다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꼭 돈이어서가 아니었다.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안다는 것, 은혜를 갚고자 한다는 응당 당연히 할 줄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잊혀 가는 사회에서 따뜻함을 전해주는 뮤지컬이 존재한다는 것이 좋았다.


  절망 속에서 함께 희망을 바라본 이들을 다룬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추운 겨울, 따뜻한 음료 한 잔, 붕어빵 한 봉지보다는 마음을 데워주는 ‘컴 프롬 어웨이’를 봐보는 건 어떨까? 11월 28일 막을 올린 ‘컴 프롬 어웨이’는, 내년 2월 18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이 기사를 통해 관심을 두게 되었거나, 볼까 말까 망설이던 학우들이 있다면 꼭 한 번 봐보길 적극 추천한다. 재관람 시 20% 할인 혜택도 있으니 더블캐스팅인 모든 배우를 만나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채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