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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69 호 [기자석] 한 권의 만화가 진로가 되기까지

  • 작성일 2026-10-13
  • 좋아요 Like 4
  • 조회수 476
서성민


  한때 읽었던 만화 한 권이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그저 재미있게 읽고 지나가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조금 달랐다. 야자와 아이의 『파라다이스 키스』는 내가 패션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시작이었다.

  만화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방학이면 하루쯤 만화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몇 권만 읽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파라다이스 키스』도 처음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1권만 가볍게 읽고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책을 읽던 중 “가슴이 두근거려서 뛸 수가 없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설레서 가슴이 뛰는 건지, 뛰어서 두근거리는 건지 모호해서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결국 ‘한 권만 읽어야지’ 했던 생각과 달리 다음 권을 집어 들고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 속 패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라다이스 키스』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며, 패션을 통해 개성과 생각을 표현하고 있었다. 단순히 예쁜 옷을 보는 것과는 달랐다. 옷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고민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파라다이스 키스』는 패션 자체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학생들의 관계와 고민을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고민과 각자의 성격이 패션을 통해 드러나는 부분이 오히려 내 마음을 뛰게 했던 것 같다. 등장인물 개개인의 특징과 주인공들의 관계,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현실적인 결말까지 어느 하나 빠짐없이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내용이다.

  물론 만화 한 권을 읽었다고 바로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하기로 한 것은 아니다. 『파라다이스 키스』를 계기로 패션디자인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뒤, 내가 정말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을지, 어느 분야로 나아가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관련된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른 진로도 생각해 봤지만 패션에 대한 관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패션과 엮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파라다이스 키스』가 내 진로를 결정해 주었다기보다는 새로운 관심사에 눈을 뜨게 해주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만화카페에서 우연히 집어 든 한 권의 만화가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 관심은 지금의 전공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진로는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를 정해놓고 찾아가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연히 읽은 책 한 권, 마음에 남은 문장 하나, 무심코 생긴 작은 관심이 새로운 길을 보여줄 수도 있다. 나에게 『파라다이스 키스』는 그렇게 시작된 한 권의 만화였고, 지금도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게 된 이유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다.



서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