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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사회

제 769 호 밈이 된 ‘회피형’, 심리학은 어떻게 설명할까

  • 작성일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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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23
이은탁

밈이 된 ‘회피형’, 심리학은 어떻게 설명할까


“너 회피형이야? 난 추격형인데.”


  최근 SNS에서는 회피형과 관련한 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연인과 다툰 뒤 연락을 피하면 ‘회피형’, 답장이 늦어 불안해하면 ‘불안형’이라는 식의 콘텐츠도 쏟아진다. 애착 유형 검사 결과를 공유하거나 자신의 연애 경험을 애착 유형으로 설명하는 모습 역시 익숙해졌다. 특히 ‘회피형’은 잠수, 연락 두절,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 감정 표현 거부 등의 행동과 연결되며 하나의 연애 관련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애착은 몇 가지 행동만으로 사람의 성격을 판별하는 도구가 아니다. 최근 애착 유형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진 만큼 원래의 이론과 온라인에서 소비되는 ‘회피형’ 사이의 간극도 커지고 있다. 실제 회피 애착은 무엇이며, 심리학은 회피형을 어떻게 설명할까.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추격형’ 밈 (사진: https://www.instagram.com/p/Db-j60Fz7bA/?igsi=cnFrMHU1cjc3aXJh)


안정형·불안형·회피형… 애착 유형으로 분류되는 인간상


  애착 이론의 출발점은 영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존 볼비(John Bowlby)다. 볼비는 어린아이가 양육자와 형성하는 정서적 유대에 주목했고, 이후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연구를 거치며 애착 이론이 발전했다. 1987년 신디 헤이전(Cindy Hazan)과 필립 셰이버(Phillip Shaver)는 이러한 애착 개념을 성인의 연애 관계에 적용했다. 초기 연구에서는 성인의 애착을 크게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으로 구분했다. 


  오늘날의 연구에서는 이를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성인 애착을 연구해 온 심리학자 R. 크리스 프레일리(R. Chris Fraley)는 현대의 성인 애착 연구가 ‘애착불안’과 ‘애착회피’라는 두 가지 차원이 어느 정도 높은지를 측정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프레일리는 사람을 특정 애착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 하나의 정답인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애착불안이 높은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떠나거나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에 민감하다. 관계에서 확인과 확신을 자주 필요로 하고 거절의 징후에 크게 반응하기도 한다. 반면 애착회피가 높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상황을 불편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친밀감이 높아질수록 자신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침해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애착불안과 애착회피의 정도에 따른 성인 애착 성향. (사진: 이은탁 기자)


  불안과 회피가 모두 낮으면 안정형, 불안이 높고 회피가 낮으면 불안형 또는 집착형, 불안이 낮고 회피가 높으면 거부·회피형, 두 가지 모두 높으면 두려움·회피형에 가깝다. 이 차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피형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상처받기가 두려워 밀어낸다”는 특징은 모든 회피 애착을 설명하기보다 불안과 회피가 함께 높은 두려움·회피 성향에 더욱 가깝다. 반면 거부·회피 성향이 높은 사람은 친밀감 자체의 필요성을 낮게 평가하거나 ‘나는 혼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서로 다른 두 모습이 모두 ‘회피형’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이고 있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이유, ‘비활성화 전략’


  그렇다면 애착회피가 높은 사람은 관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연구에서 중요한 개념은 ‘비활성화 전략’이다. 스트레스나 관계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애착불안이 높은 사람이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계속 연락하거나 확인을 요구하는 ‘과활성화 전략’을 사용한다면, 애착회피가 높은 사람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애착 욕구를 축소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상대와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인과 중요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 “나 너무 피곤하니까 다음에 이야기하자”라고 대화를 미룰 수 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는 행동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이 생길 때마다 대화를 중단하고, 도움을 거부하며, 문제의 존재까지 축소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회피적인 감정 조절 전략과 연결해 볼 수 있다.


  애착회피가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자신의 취약함을 노출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거나, 상대에게 의지하는 상황에서 불편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관계에서 정서적 거리를 두고 자신의 감정을 적게 표현하거나 갈등 상황에서 물러나는 방식으로 안정감을 되찾으려 한다. 연구에서도 높은 애착회피는 정서적 친밀감의 감소, 자기개방의 어려움, 감정 억제, 타인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행동의 감소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잠수 이별하면 회피형? 행동 하나로 사람을 읽을 수 없는 이유


  회피형이 온라인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이유 중 하나는 연애 갈등에서 나타나는 행동과 자주 연결되기 때문이다. 연락을 끊거나 갈등을 피하고,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에게 ‘전형적인 회피형’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하지만 잠수 이별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애착회피가 높다고 판단할 근거는 부족하다. 갈등을 피하는 행동 역시 성격, 의사소통 방식, 현재의 스트레스, 관계 만족도, 과거 경험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같은 사람도 모든 관계에서 동일한 애착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인 프레일리의 연구에서도 개인의 애착은 일정한 경향을 보이면서 관계 대상과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연애 관계에서는 불안을 크게 느끼거나, 특정 연인과의 관계에서 이전보다 높은 안정감을 경험하는 식이다. 


  정신과 의사 아미르 레빈은 최근 애착 유형을 둘러싼 대중적 논의가 과학적 연구와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애착 유형을 고정된 성격이나 운명처럼 바라보는 해석을 경계하며, 애착은 관계에 따라 달라지고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패턴이라고 설명했다. 연락을 피했으니 회피형, 집착하니 불안형과 같은 판별이 애착이론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다.


▲자신을 ‘회피형’이라고 표현한 코미디언 김원훈. (사진: JTBC ‘연애전쟁’ 캡처)


유행 밈 속에 담긴 심리학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애착 관련 콘텐츠가 모두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한 사람은 계속 쫓아가고 다른 사람은 계속 도망간다”라는 이른바 ‘추격-회피’ 관계는 실제 관계 연구에서도 관찰된다. 애착불안이 높은 사람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 상대에게 더 많은 확신과 친밀감을 요구할 수 있다. 애착회피가 높은 사람에게 이러한 요구는 자신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 결국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른 사람은 뒤로 물러나고, 상대가 물러날수록 다시 불안이 커져 더욱 강하게 접근하는 순환이 만들어진다. 높은 애착회피는 갈등 상황에서 물러나는 행동과 연관됐으며, 한쪽이 요구하고 다른 쪽이 물러나는 갈등 패턴은 두 사람 모두의 낮은 관계 만족도와 관련이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불안 성향이 높은 사람과 회피 성향이 높은 사람이 만났을 때 신뢰와 관계 만족도가 특히 낮아질 가능성이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도 어느 한 사람을 ‘문제 있는 회피형’으로 지목하지 않는다. 한쪽의 추격이 다른 쪽의 회피를 강화하고, 회피가 다시 추격을 강화하는 상호작용이 존재할 수 있다. 개인의 유형만 살피면 두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패턴을 놓치기 쉽다.


애착유형, 바뀔 수 있을까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회피형이 된다’는 식으로 애착유형의 형성을 어린 시절의 경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초기 양육 경험이 애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애착이론의 중요한 전제다. 자신의 감정 표현이나 도움 요청에 양육자가 반복적으로 거절하거나 무반응한 환경에서는 감정을 표현해도 원하는 돌봄을 받을 수 없다는 기대가 형성될 수 있다. 그 결과 감정 표현과 도움 요청을 줄이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이 관계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전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의 애착을 평생 결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청소년기와 성인기의 관계 경험, 연애와 이별, 주변 사람의 반응 등도 애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프레일리는 애착의 안정성과 변화 가능성을 함께 강조한다. 어느 정도 지속되는 관계 패턴이 있더라도 새로운 관계 경험이 기존의 기대와 반복적으로 어긋날 경우 그 기대 역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가능성은 높은 애착회피 성향에도 적용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과 도움 요청에 꾸준히 반응하고 지지를 보내는 경험은 ‘누군가에게 기대면 상처받을 것이다’라는 예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변화의 속도와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으며,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한다고 해서 회피 성향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모든 문제를 참고 받아주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회피 성향이 높은 사람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과 반복적인 연락 두절이나 일방적인 관계 단절을 감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계 안에서는 감정 표현을 즉시 요구하기보다 선택권과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필요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회피 성향이 높은 사람 역시 감정을 밀어내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살펴보고, 잠시 거리가 필요하다면 언제 다시 대화할 것인지 알리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자”와 같이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관계 문제로 일상에 어려움이 생긴다면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통해 자신의 관계 패턴을 살펴볼 수도 있다.


‘회피형’이라는 이름표


  애착유형의 유행은 우리가 관계에서 반복하는 행동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왜 나는 상대의 답장이 조금만 늦어도 불안할까”, “왜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갑자기 거리를 두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애착이론은 유용한 자기 이해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만 “회피형이라서 그래”, “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라는 말은 상대의 행동을 빠르게 이해한 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람을 미리 만들어 둔 틀 안에 가둘 위험도 있다. 


  누군가와 갈등을 겪었을 때 “저 사람은 회피형이야”라고 결론 내리는 것보다 “우리는 갈등이 생길 때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편이 애착이론의 취지에 더 가깝다. 사람을 유형 안에 가두는 순간 이해는 멈춘다. 애착 유형이 유행하는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판별보다 관계와 감정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는 태도일 것이다.


이은탁 기자